FETISHRAMA[Fetish+Drama]페티시라마

도병규

포르투칼어인 페이티코(feitico)는 오늘날 심리학에서 성도착(性倒錯)의 형태로 분류되는 페티시(fetish)의 어원이며 ‘마음이 담긴 물건’을 의미한다. 원시신앙의 숭배대상으로서 주로 나무나 돌 따위가 사용되었고, 고대 그리스 무덤에서는 사람의 형상을 한 인형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러한 행위는, 인간이 사물에 아니마(anima)를 부여하는 상황을 통해 심적 위안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인형은 주술의 용도에서 장난감의 용도로 자리바꿈 하였지만, 감정이입의 주체임은 여전하다.

인형을 통해 체험한 내 유년시절의 가학(加虐)적 상상은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한 은밀한 드라마(drama)였다. 그것은 결코 동화적이거나 이상향을 꿈꾸는 일반화된 어린이의 상상이 아니었다. 파괴적이고 성(性)적이었으며 금기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했다. 사회적 시스템 속에서 어린이가 차지해야 할 위치를 통째로 배반하는 상황이 지니는 패러독스(paradox)가, 내 작업의 모티프(motif)로 작용했다.

이러한 모순적 상황은 인형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나의 유년시절 동물학대의 체험 속에도 내재(內在)하고 있다. 가해자임과 동시에 나 자신이 죽인 동물의 무덤을 만들어 애도(哀悼)했던 행동은, 잔혹한 행위 자체보다 더욱 이해하기 힘든 지점에 놓여 있었다. 나는 스스로가 저질렀던 수수께끼를 추적해 가며 이 시기가 지니는 모호하고 다중적인 지점의 메타포(metaphor)를 통해 이야기를 구성한다. 나는 자아를 상징하는 대체물로써 인형을 사용하거나 때로는 나를 통해 새로운 아니마를 부여 받은 초현실적(超現實的)존재로서 인형을 등장 시킨다.

인형에 대한 나의 각별한 시선은, 성인이 된 후에도 남아있는 유년시절의 잔재(殘滓)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감성은 키덜트(kidult)적 성향으로 이어졌으며 인형이나 장난감 수집을 즐기는 하나의 취미로 자리 잡았다. 작업에 주로 사용되는 인형은 엄밀히 말해 합성수지로 빚어낸 피조물에 불과하지만, 인간을 닮아 있는 표정이나 몸동작으로 인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나는 그들에게 각기 다른 역할을 부여하고 구조적 체계를 지니지 않은 상상 속의 드라마를 가시화함으로써, 자아 또는 사회구조에서 드러나는 역설적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